2024.3.24. 주일오후설교(성지순례) 누가복음 1:1-4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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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4 (NKRV)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주일 오후 예배 (24/일)에 나오신 성도님들 /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가 지난 2023년 9월 11일 (월)부터 22일(금)까지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3 나라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저도 다녀왔는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
시내산과 갈릴리 바다였습니다.
그때 신현천 집사님께서 영상을 담으셨는데,
나라별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로 유트브에 편집하여서 올려 놓았습니다.
오늘은 이 세편 중에서/ 이스라엘 편을 같이 보려고 하는데요.
우리가 갔던 장소는 베들레헴 - 예루살렘 - 가이사랴 - 나사렛 - 갈릴리 였는데요.
특별히 다음주 (25-31일)가 고난주간이고/ 부활주일 이기 때문에요.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동영상을 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행을 다녀온 순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다시 편집을 해서 보겠습니다.
수고해주신 신현천 집사님, 방송 간사님, 이스라엘 선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1.인천공항 장면 - 이집트편 35초 - 48초
2. 나사렛으로 가겠습니다.
이스라엘 편 30:29 -
마리아 수태 고지 교회로 가고 있습니다.
김부덕 집사님, 박희선 권사님 뒷 모습입니다.
설명 - 나사렛 수태고지 교회
수태고지교회는 이즈르엘 골짜기 바로 북쪽, 하부 갈릴리 시작 지점인 나사렛에 위치한 교회이다.
나사렛은 해발 347미터에 위치해 있으며 레바논 산맥의 가장 남단 언덕에 자리잡은 스불론 지파의 땅에 속해 있던 땅이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해변길은 지중해 해변길을 통과해 므깃도 골짜기를 지나 나사렛을 우회해서 수 킬로미터 동쪽에 있는 티베리아스까지 연결된다. 그러므로 나사렛은 그 당시 가장 중요한 해변 길과는 조금 떨어진 산동네라고 볼 수 있다.
1세기의 총인구는 480명을 못 넘었을 것이지만,
현대 나사렛의 인구는 7만 6천명이 넘는 도시가 되었다.
현대 나사렛은 유대인들이 주로 사는 지역에 위치한 나사렛 일리트(Nazareth Illit) 마을이 있고,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로 사는 구 나사렛(Old Nazareth)이 있다.
이곳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 예수님이 약 28년동안 사셨던 요셉의 집, 예수님이 설교하시다가 사로잡힌 회당, 그리고 그 외 서기 1세기 나사렛 사람들의 생활 현장의 모습을 간직한 나사렛 빌리지가 있다.
마리아 수태고지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라고 여겨지는 동굴 위에 지은 교회이다.
교회로 들어가면 좌측편 아래쪽에 동굴을 포함한 마리아의 집이 있으며, 그 안쪽 제단 아래 라틴어로 글이 쓰여있다. “이곳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다”
서기 427년 비잔틴 시대에 교회가 지어지기 전에 회당 교회가 있었고, 파괴된 교회 건물 흔적 위에 12세기 십자군들은 교회를 재건축하였다. 지금 현대의 교회는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아 바루치가 1951년 설계했고 기오바니 무지오가1969년 완공했다.
서방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가 정혼한 상태에서 자신의 집에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메시아의 탄생을 예고했다고 해서 교회의 이름에 ‘선포’ 혹은 ‘고지’(annunciation)라는 말이 붙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눅 1:31)
성요셉 교회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목수일을 하였다는 장소 위에 세워졌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유대교의 결혼 풍습에 따라 정혼한 상태였다. 유대인들의 결혼은 두 단계로 나뉘어 졌는데,
첫번째 단계는 두 명의 증인 앞에서 ‘케투바’라는 결혼 서약서에 서명 날인을 하고 부부로 인정을 받지만 동침은 하지 않는 단계이다.
두번째 단계는 7일동안의 결혼잔치와 함께 신랑이 마련한 신혼집에서 동거 단계에 들어가는 기간이다.
마리아는 첫번째 단계, 즉 정혼(betrothal) 단계였고, 신랑이 신혼집을 준비하고 다시 찾아오기까지 기다리는 기간이었던 것이다. 이 기간은 짧게는 1년, 길게는 야곱처럼 최장 7년이 걸리기도 했다.
첫번째 단계에서 신부는 자신의 처녀성을 보존해야 했고, 신랑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 결혼은 파기될 수 있었다.
그러나 천사는 마리아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처녀임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잉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눅1:35).
마리아가 임신하자, 남편 요셉은 파혼하려고 했으나 결국 주의 사자의 지시에 따라 결혼 두번째 단계에 신부 마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던 것이다. 마리아와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 주위의 나사렛 동네 사람들은 마리아와 요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했을까?
결혼 두번째 단계에 들어가기도 전에 배가 불러오는 마리아를 보고 요셉은 주의 사자의 계시대로 마리아를 데려왔지만 (마 1:20), 동네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을 수도 있다. 실제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고향 나사렛에서 설교하시는데 동네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막 6:3).
아버지를 알 수 없는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뜻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회당에서 설교하시다가 동네사람들에 의해 낭떠러지로 끌려가 죽임을 당할 뻔 하셨다(눅 4:29). 어떻게 보면 그는 나사렛에서 자라나는 동안 출생의 근본이 의심스러운 손가락질의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평생에 따라다닌 이름은 ‘나사렛 예수’ 였다. 바로 나다나엘이 말한 ‘선한 것이 날수 없는 동네’ 나사렛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 보다 더 위대한 자가 있었던가? 그 모든 것을 이룬 배경은 하잘것없는 나사렛이란 마을로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나의 배경이 남보다 못하고, 나의 부모의 재산과 학식이 다른 잘나가는 부모의 것보다 못하기 때문에 현재의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의 출생이 이상해서 이 세상은 절망이라고 말하지 말라. 당신을 사랑하셔서 모든 고난을 홀로 감당하신 이는 바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목자들의 들판교회
8:52 -10:57
예수님 탄생 기념 교회 22:49
유다 광야 21:51 - 22:38
가나혼인잔치 기념교회 (34분 50초- 36분 18초)
갈릴리 호수 37:09-
가버나움 부두/ 갈리리 호수에서 애국가 제창
오병이어 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 이스라엘에서 가장 이쁜 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는 프란세스칸이 관리하는 교회이며,타브가에 위치를 하고 있고,프란세스칸에 소속된 교회이다.이곳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사도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다.
현제의 건물은1933년에 지어졌으며,이전 비잔틴 시대 교회 위에 지어진 교회입니다. 9세기에는 이곳을“숫불의 장소”라고 불렀다고 합니다.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숫불을 피운 것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또한808년에는“12왕좌”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해변가에12개의 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이 교회는 비잔틴 시대에 파괴가 되지 않고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다가1263년에 파괴가 되었다고 합니다.이곳은 바오로6세가1964년 방문한 곳이라고 합니다.
이 장소가 정말 그 장소인가? 물론 성경의 지리적 근거는 없다. 전승과 모자이크는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버나움이 당시 큰 항구였고, 베드로도 가버나움에 살았으니, 가버나움 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위치도 가버나움과 걸어서 10분안에 갈 만큼 멀지않는 거리이다.
nWhat to see
Mensa Christi
이 교회는 제단이 있는 곳에“Mensa Christi”라는 글자가 잇는 큰 돌이 있습니다.이 멘사 크리스티의뜻은“Table of Christ”라고 합니다.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조반을 준비해주신 장소였다는 전승을 따라 놓여진 돌입니다.
Holy steps
교회의 호수쪽에는 돌을 깍아서 만든 계단이 있다.비잔틴 시대 순례자Egeria는 이 계단이 바로 예수님께서 서 계셨던 장소라고 적고 있다.하지만 이 계단은2, 3세기의 계단이다.이 계단 아래에는 하트 모양의6개 기둥이 잇는데 그 기둥은“12왕좌”로 알려져잇는 기둥이다.
가버나움 예수의 마을
가버나움
가버나움(먼저되는것, 나훔 ; 위로 뜻 가버나움은 당시 갈릴리와 그의 마을에서 예수 활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지역 회당에서 가르치셨습니다. )
또한 사도 베드로, 야고보, 안드레, 요한과 세리 마태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가버나움은 기원전 3천년 초기 청동기 시대에 처음으로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마을은 약 60두남(6헥타르)에 인구는 약 1,500명이었습니다
세금 모으는 도시 (마17:24)
유한 도시, 백부장이 한 사람이 회당을 지어줌(눅7:1-7)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2번째 고향
• 야이로의 딸을 고침(마 9:18~26, 막 5:21~43, 눅 8:41~56)
•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심(마가복음 1:21~28)
• 베드로의 장모를 고침(마 8:14~15)
중풍병자를 고치심(마 9:2~8, 막 2:1~12, 눅 5:17~20)
• 백부장의 하인을 고침(마 8:5~13, 눅 7:1~10)
•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고침(막 5:21~43)
•손이 마비된 사람도 가버나움에서 고침(막 3:1-6).
- 마 8: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 막 1: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 눅 4: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
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성경 말씀에는 분명히 베드로의 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에서는 오히려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의 집이라
고 하고 있다. 이 집을 베드로의 장모의 집이라고 하는 성경적 근거는 없어 보인다.
- 요 1: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성 베드로 기념 교회 (베드로 장모 집)
베드로 집터
베드로의 집
이곳은 에제리아가 384년에 발견을 했다. 그때에도 지금과 같은 벽이 세워져 있었다고 함. 1921년에 한번 깨끗이 정리되고 난 다음에 다시 1968년에 카보라는 사람에 의해서 다시 잘 정리 하게 됨. 그때 이 위에 있는 건물도 지어지게 됨. 위쪽의 건물은 이 곳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어졌으며, 이곳은 그 시대에 여러 번 고쳐졌는데 1세기에는 작은 가정교회었다가 그후 4세기 정도에 더욱 확장되고, 약 450년 경에 팔각형의 교회가 세워졌다고 함. 그때 동쪽에 세례터까지 만들어지게 됨. 여러 개의 방이 잇는데 그 중 한 방만 회반죽으로 포장이 된곳이 있고 적어도 6번 이상 칠해졌다고 합니다. 역시 벽도 회반죽으로 칠해져 있었고 그래서 이곳이 바로 예배를 드리던 장소라고 여겨짐.
가버나움 유대교 회당
베드로집터위에 8각형 비잔틴 교회 5세기
안길 (새리마태)
문등병친구들, 베드로 장인, 회장당 야이로의 딸, 혈루병 걸린 여인. 주님을 만나기 위해 두려움(장애물, 불신앙)을 넘어서야 합니다.(27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주님께 나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으로만 끝내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의 삶이, 그의 존재가 하나님의 존재로 바꾸시길 원합니다.
Synagogue
이 회당은 윌슨에 의해서 밝혀졌으며 아래는 현무암의 검정색 돌 위쪽으로는 석회암의 하얀색 돌로 이루어져 잇다. 안쪽벽은 플라스터가 칠해져 있고 위쪽으로는 여자들을 위한 2층 공간이 있었을것으로 추정한다. 지금의 하얀색으로 만들어진 회당은 4,5세기에 만들어 졌을것으로 추정이 되며, 아래쪽의 검정색 돌이 아마도 예수님 시대 당시의 회당의 터일거라고 loffreda 는 주장한다.
회당은 아직도 그릭어와 아람어의 비문이 있는데 그 비문에는 이 건물을 짓는데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적혀져 있다. 이 회당은 누가복음에 따르면, 백부장이 지은것으로 나온다(눅 7:1-10). 지금의 하얀색은 비잔틴 시대이며, 아래는 예수님 시대때의 회당이다. 회당은 이전에 회당이 있었던 장소에 지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 시대 당시 백부장이 지었던 회당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잇다.
회당안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예수님께서 곧 회당에..“ 예수님께서도 이곳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더러운 귀신을 내어 쫒으심 막 1장 21절
회당의 2층구조 옆방은 여행객들을 위한 방 기거할수 있는 곳, 또는 토라를 가르치는 방이었다.
팔복 교회 43:27
팔복교회는 마태복음 5,6,7장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서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사역을 하셨던 가버나움과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언덕에 자리
아마도 걸어서 약 2-30분 정도면 가버나움에서 지금의 팔복교회정도까지 올수 있을 거리
이곳은 가버나움과 아주 가까운 곳이어서 예수님께서 자주 걸으셧을 장소입니다. 정확한 산상수훈의 장소는 확실치 않지만, 이 장소가 그래서 1600년 정도 산상수훈의 자리로 알려져 왔음
이 교회(교회 이름이 Mount of Beatitudes 입니다.) Beatitude는 아름다움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교회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교회는 매우 젊은 교회예요.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세워진 연대가 아주 최근이라는 겁니다. 대부분 이스라엘의 많은 교회들은 이미 3세기 내지는 4세기에 교회가 세워지고, 아무리 늦어도 5세기에는 그 중흥기를 맞이하는데, 이 교회만큼은 1939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건물의 생김생김도 매우 현대식이지요. 이스라엘의 어느 교회에나 있는 초대교회의 모자이크 바닥도 역시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교회가 덜 중요하거나, 별 의미가 없는 곳은 절대로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 교회를 “팔복교회”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예수님께서 보통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겁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만 하더라도 남자 어른만 5,000명을 먹이셨으니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만 한 공공의 장소가 어디 흔했겠냐는 겁니다. 오늘날에도 한번에 5,000명 정도 모이려면 문화예술회관이니, 무슨 학교의 강당이니 하는 곳을 빌려서 모이는데 그런 시설이 예수님 당시에 어디 흔했겠습니까? 게다가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팔복의 말씀을 전하실 때에 산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했는데, 산에 몇 백 명, 몇 천 명이 모여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만한 장소가 있었겠냐는 거지요. 나무가 빽빽했으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이 듬직한 산에 오르면 그런 질문이 싸~악 사라집니다. 키 작은 풀들로 뒤덮인 이 산에서 2,000년도에 교황이 10만 명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설교를 했었거든요. 10만 명이요. 신약학자들이 말하기를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수를 약 1만 2천명 내외로 보고 있으니, 이 산은 그 사람들을 다 포용하고도 넉넉했겠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 장소로 불러들일 수 있는 유일한 산이 이곳이기에 사람들이 이곳을 팔복산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하지만 궁금증은 가시질 않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만 한 장소가 있다손 치더라도, 예수님께서 기차 화통을 삶아 드시지 않은 이상, 그 사람들에게 도대체 어떻게 한 번에 말씀을 전하셨을 수 있었는가 하는 거지요?
사람들이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바람을 이용해서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갈릴리 호수의 특성상 아침이면 바람이 호수에서 산 쪽으로 불어 오르고, 늦은 오후가 되면 반대로 그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산에서 호수 쪽으로 불어 내립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 오르셔서 말씀을 전하셨다면, 바로 늦은 오후 즈음 살살 바람의 방향이 산에서 호수로 불어 내리기 시작할 즈음 잔잔한 미풍을 등지고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을 거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목소리가 바람을 따라 사람들의 귀로 흘러들어가는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너무나 감격적입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예수님이 영화에서처럼 목소리를 깔고 “마음이 가난한 자는…” 하고 말씀하셨을 것 같지는 않아요. 좀 더 우렁차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외쳤을 것 같아요. 무언가가 속에서 꿈틀대는 듯한 강한 목소리 말이지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 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정말 엉뚱한 것 같아요. 생각해보세요.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가난한 자”, “애통한 자”, “핍박 받는 자” 같은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겁니다. 제 기준으로는 이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더군다나 복 받을 것 같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복이 있다는 겁니다. 허! 참~
이제 갈릴리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겠습니다.
11:57 -
다윗왕의 가묘
마가의 다락방
마가의
다락방
Last Supper Room (마가의 다락방)
Last Supper Room ( 또는 ‘마가의 다락방’) 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최후의 만찬을 하신 것을 기념하는 ‘다락방’ 으로 2층에 있는 공간입니다. 그 위치는 시온산 다윗왕의 가묘 위쪽 2층 공간입니다.
In the Bible
막14: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막14: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막14: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막14: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Authenticity(신뢰성)
이 최후의 만찬 장소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성경에서도 많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현제의 그 위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건물은 12세기에 지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위치는 그 원래 위치의 가까이 있거나 아니면 그 위에 세워진 장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건물의 바닥에는 비잔틴과 로마 시대의 포장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최소 주후 2세기 정도 까지는 dating 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장소는 에피파네스 (Epiphanius of Salamis) 가 130년에 언급한 시온산에 존제 하였다는 ‘little church of God’ 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2세기 당시에는 많은 크리스찬들이 어려움과 핍박을 받는 시기였기 때문에 새로운 거룩한 장소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보면 130년에 존제 하였다는 ‘little church of God’ 은 그 이전부터 중요한 장소로서 지켜지던 곳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기에 이 장소는 많은 크리스찬들이 지내는 장소였으며 아마도 부자 크리스찬이 자신의 집을 예배를 드릴 수 잇는 장소로 허락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이유는 아마도 그의 집 근처 또는 그 집 자체가 그런 사건과 연관이 있었던 곳이었음을 반증하여 주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History
시온산 교회는 핍박이 끝나는 시기인 주후4세기에 재건이 되었는데 그 위치는 ‘the Upper Church of the Apostles’ 이라고 알려진 장소에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명칭은 ‘최후의 만찬’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성령을 받은 장소’와 연결이 되며 그 장소 역시 다락방 ‘Upper room’ 으로 언급이 되고 있는 곳이다 (행 1:13; 2:1)
5세기에 이 교회는 ‘Zion, Mother of all the Churches,’ 로 언급이 되고 이 시기에 이 장소를 ‘최후의 만찬’ 장소와도 동일시 하게 된다. 이것은 아마도 오순절 사건과, 최후의 만찬 둘 다 ‘다락방’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때문에 나온 결론 같다.
이 비잔틴 교회는 614년에 페르시안 침입에 의해서 한번 무너지고 이후 965년에도 한번 더 무너졌다고 한다. 이후 십자군들은 이 장소를 1099년 7월 도시를 향한 마지막 습격 전에 이루어진 고행의 행진의 장소로 선택하였다. 즉 지금 순례객들이 방문하는 이 최후 만찬 장소는 12세기에 십자군들이 Church of the St. Mary of Zion’ 의 한 부속 건물로 지어놓은 장소인 것이다.
이 교회는 예루살렘을 영화롭게 한 교회들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십자군 시대가 끝이 나면서 한번 더 무너지게 된다. 13세기 정도까지 이 건물은 기둥과 단순한 구조로 남아 있다가 14세기부터 1552년 까지 프란세스칸에 의해서 재건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이 방은 1524년 오토만의 모스크로 바뀌게 된다.
What to See
이 다락방은 시온산의 주차장에서 서쪽 골목을 따라가면 사인이 나오는데 그 사인을 따라 2층에 올라가면 그 다락방이 나온다. 이 다락방은 비어잇는 4각형 구조의 방으로 기둥과 아치형 천장이 있다. 그 기둥들은 대부분 12세기의 것이며, 14세기의 그림은 문의 오른쪽 벽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 방은 모스크의 흔적들도 가지고 있는데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과 아랍 글씨를 볼 수 있고 아랍 사람들의 Mihrab 도 있다.
방의 남서쪽의 계단은 다윗의 가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 지금은 닫혀서 내려갈 수 없고 대신 바깥의 계단을 따라 가면 된다. 그 계단에 입구 쪽에 있는 대리석 장식의 기둥에는 펠리칸이 부모의 가슴을 쪼아 파는 모습이 형상화 되어 있는데 이것은 크리스찬 상징적 조각으로 희생과 자비를 나타낸다. 바깥 쪽으로 나가면 천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잇는데 그곳에서는 감람산과 기드론 골짜기, 날씨가 좋을 때에는 사해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베드로 통곡 교회
예수 승천 교회
감람산
예수 눈물교회
겟세마네 교회 15:30
십자가의 길 15:46 - 21:11
십자가의 길은 라틴어로 "비아 돌로로사"라고 불린다.
비아 돌로로사는 라틴어로 "슬픔의 길"이라는 뜻이며 총 14처소로 되어 있다. 비아 돌로로사는 사자문 안쪽 500미터 지점 부터 시작하여 무덤교회까지 이어져 있다.
본디오 빌라도 법정 추정 장소
- 하드리안 황제의 개선문옆에 에케호도 요한복음19:5 - 보라 이 사람이로다
1지점
선교지점
마 27:20-26
: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2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22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 돌을 깐 뜰 (lithostrotos)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져 심문을 당하셨다 (요 19:2,5) 심문을 당한 장소는 헬라어로 lithostrotos (=paved floor) 라고 불린다.
요 19: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 (lithostrotos) (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이 돌을 깐 뜰은 1, 2 처소 맞은편 아랍 초등학교 (Omarlyeh) 안에 있다. 하지만 일반인으로서 쉽게 들어가지는 못한다.
십자가의 행렬이 진행되는 금요일 오후에 개방이 되어 초등학교에서 부터 행렬이 시작된다. 성지 순례 오시는 분들은 일반적으로 프란시스칸 소속의 "1처소 채찍질 교회"와 "2처소 선고교회"를 방문하게 된다.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재판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은 장소입니다.
- 선고 1 지점 빌라도법정 (The First Station) 빌라도의 법정(현재는 아랍학교가 있음) 안토니오 요새의 남쪽 부분
으로 성전 뜰에 붙은 자리로 예수께서 총독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 받으셨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요한복음
19:416)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형으로 처형하도록 선고한 후에, 자기는 죄가 없다고 손을 씻었던 그릇이라고 전
해지 는 돌그릇이 있고, 그 마당은 네모나게 깎은 돌들을 세워 박아서 포장을 하였는데, 바로 그곳이 예수께서 재판
받기 위해 서 계셨던 장소이다.
제2지점
채찍,십자가를 받으신 장소
제2지점 : 채찍교회가 있습니다.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홍포를 입고 희롱당한 곳.
마태복음27장
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
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채찍질 교회"(The Flagellation)는 천주교 소속의 성경학교 교정에 있다. 주후 1839년에 지어졌고, 1929년에 십
자군 시대 건물 모양으로 개조되었다. 이 교회의 천정에는 가시관이 아름답게 모자이크 되어 있다. 제단 주변의 3 면은 색유리로 만들어져 있는데 바라바가 놓임을 받고 좋아하는 장면과 예수님이 채찍질을 당하는 장면과 빌라도 가 손을 씻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선고교회" (The Church of Ecce Homo)는 1868년에 봉헌된 교회로 현재는 시온 수녀원(Convent of the Sisters of Sion) 소속 건물이다. 안토니오 요새의 한 부분이었으며 교회 제단에 있는
아취는 주후 2세기에 로마 사람이 지은 개선문의 한 부분이다. 빌라도가 군중에게 "보라 이 사람이로다(에코호모)" 라고 채찍질을 당한 예수를 내 보였다는 곳(요19:5)이다. "왕의 놀이터"(The King's Play) 라고 불리우는 곳은, 로마 군인이 모여서 쉬고 놀던 곳이다. 지금도 그 돌바닥에는 놀이에 필요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로마군병이 "유대인
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마27:27-31) 라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예수님을 조롱하던 곳 이다.
3지점
1번째 쓰러진 장소
제3지점 :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다 처음 쓰러진 곳.
예수님께서는 전승에 총 3번 넘어지셨다고 한다. 그 처소는 3처소, 7처소, 9처소이다. 그 중 첫번째 넘어지신 장소 3처소는 2처소에서 약 5분 정도를 걸어가면 나오는 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이전에는 Turkish 목욕탕이었다고 한다. Armenian catholic 이 이곳을 1856년에 샀다고 함.
이 교회 정문에는 예수님께서 넘어지신 장면을 묘사한 조각이 있으며, 안쪽으로 쓰러지신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는 천사들 그리고 입구 안쪽 바로 위쪽으로는 천사들과 함께 십자군의 유럽 사람들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들의 무리가 그려져 있다.
교회 바로 앞 길에는 하수도 공사때 발견된 제2성전 시대의 포장 돌판을 볼수있다 십자가를 지고 쓰러진 예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작은 예배처소는 1948년에 순례자들 에 의해서 세워진 기도실이다.
교회 밖의 예수님 시대의 카르도를 이루고 있던 돌들. 실제 예수님 당시의 지대는 지금보다 3미터 정도 아래에 있다고 한다 이 돌은 그 아래에서 올려서 지금의 레벨에 맞춘것.ì
4지점
마리아
만난 곳
제4지점 : 예수가 슬퍼하는 마리아를 만난 곳.
(The Fourth Station) 3 지점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0m 떨어진 곳이다. 길가의 좁은 문 위에서 예수님과 마리아가 만나는 장면이 부각되어 있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만나신 곳이라고 전해 지는 곳
이다. 처음 이곳에 교회가 선 것은 주후 7세기경 인데, 현재 있는 교회는 1881년에 지어진 것이다. 3, 4, 5 지점은 예루살렘 성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치즈 골짜기에 속하는 곳으로, 십자가의 길 14 지점 가운데 가장 낮은 곳에 위치 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와 만났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 전승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 입구에는 예수님이 어머니를 만나는 반신상 조각이 있습니다.
1881년에 Armenian 교회는 our lady of the spasm 교회를 세웠고, 교회 지하당에는 모자이크로 한 켤레의 신발 모양이 있는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의 아들 예수와 눈빛을 마주친 장소라고 합니다.
5지점
구레네 시몬 만난 곳
제5지점 : 시몬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곳.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마 27:32
4 지점에서 남쪽으로 10m 정도 가다가, 서쪽으로 꺾이면서, 치즈 골짜기를 벗어나, 골고다를 향해 언덕길이 시작
되는 곳이다.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지게 했던 곳(마27:32)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주후 1895년 천주교에 의해 지어졌다.
예수님의 손자국이 있는 돌(안쪽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음)
6 지점: 베로니카 여인의 만난 곳
제6지점 : 성 베로니카 여인이 예수의 얼굴을 닦아준 곳.
제 5 지점에서 골고다를 향한 언덕으로 약 3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수녀원이다. 이 곳은 열두해 혈루증을 앓다가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대고 나은 여자(막 5:25-34)라고 전해지는 베로니카가, 십자가를 지고 가며 피와 땀을 흘리 는 예수님의 피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 드린 곳이라고 전해진다. 비잔틴 시대에는 코스마스 수녀원이 있었고, 지금
있는 수녀원은 1895년에 지어진 것이다.
베로니카라는 이름은 외경 “Acts of Pilate”에 등장을 한다. 성경에는 베로니카 여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하지만 학자들은 혈루병 고침받은 여인으로 생각을 한다(눅 8:43-48).
베로니카 여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중에 예수의 얼굴의 땀과 피를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는데 그 손수건에 예수의 얼굴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 손수건은 1297년까지 베드로 대성당에 있었고, 1885년 교황 Leo 13세 에 의해 인가 되었다. 카톨릭에서는 7월 12일을 베로니카를 기리는 날로 지키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6세기 정도의 건물이었던 St. Cosmas 를 Greek 카톨릭이 1883년에 사게 되고 1895년 베로니카 교회를 짓게 되었고 1953년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7지점
2번째 쓰러진 곳
제7지점 : 예수가 두번째로 쓰러진 곳. 6 지점에서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남북으로 이어지는 길과 만나게 되는데,
그 삼거리의 서쪽 건물이 제 7 지점으로, 문 위에 표가 되어 있다. 이곳은 예수께서 골고다를 향해 가다가 두번째 쓰러진 곳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1875년 천주교에서 구입하여 학교(School of the Arts and Crafts)로 사용하고 있다.
전승에 따르면 이곳에 고대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의 이름은 “Gate of the trial” 이었다고 한다. 이 문은 고소당한 죄인이 성밖으로 나갈때 그 죄인의 재판 결과가 문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8지점
우는 여인들에게 말한 장소
제8지점 : 예수가 여인들을 위로한 곳.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제 7 지점의 바로 서쪽에 있는 희랍정교회다. 이 지점의 표는 라틴 십자가에 희랍말(NIKA)이 기록된 돌판이다. 검
게 그을리고 더렵혀져 있어서 주의 깊게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이곳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뒤를 따르며 슬
피 울던 여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나를 위해 울지 말고 ,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말씀하신 곳
이라고 전해진다
8처소 : 우는 여인들에게 말한 장소
왼쪽벽에 하나의 둥근 돌이 박혀있고 그곳에 그릭어로
Nike-le xo nika,
“jesus will always triumph”
라는 뜻의 글이 쓰여 있다.
9지점
3번째로 쓰러진 곳
제9지점 : 예수가 세번째로 쓰러진 곳.
이 지점은 예수님 무덤교회의 지붕 위에 있는데, 골도다 정상과는 매우 가까운 거리다. 이곳에는 애굽 정교회인 콥 틱교회가 있다. 이곳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쓰러진 자리다. 이 교회 지하로 큰 지하 물 저장고가 있다. 이 콥트 교회는 원래 십자군 시대의 식당이었다고 한다.
콥트는 이집트와 북동 아프리카 및 중동에 기반을 둔 정교회로 지금은 에디오피안 수도승들이 있다.
10 지점
예수님의 옷을
벗기신 장소
제10지점 :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요 19:23
말씀에 따르면 나체셨다는 겁니다. 예수가 옷 벗김을 당한 곳 성문 입구에서 돌 침상을 바라보며 오른쪽 옆으로 돌아서면, 계단이 있고 , 몇개의 계단을 오르면, 그곳이 골고다 정상이다.
11 지점
십자가에 못 박으신 장소
11지점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장소이며,
예전의 골고다 언덕은 이제 계단으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성묘교회를 들어서서 우측의 계단을 오르게 된다.
여기에는 2개의 예배당이 있다. 하나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고 다른 하나는 라틴교회 소유이다.
예배당 벽에 있는 모자이크에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아브라함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묘사되어있다.
12 지점
십자가에 달리신 장소
제 12처소 "십자가에 달리신 장소"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막 15:27)
12처소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다. 제단 아래쪽으로 구멍이 뚫려있어 손을 넣어 골고다 돌을 만져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양쪽 옆으로는 두 강도가 못 박혔던 곳이다.
골고다의 돌을 자세히 보면 제단 오른편에 균열되어 깨진 돌을 볼 수 있다. 이 균열은 예수께서 운명하실 때 생긴 "돌이 터진(갈라진)" 돌을 볼 수 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 27:51)
이 균열은 골고다 언덕 밑에 있는 아담 예배당까지 이어져 있다.
13지점
예수의 시신을 놓았던 곳
제 13지점
(요 19:39-40).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자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종부성사의 돌 (예수님의 시신이 놓인 돌판)
라틴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이 돌판위에 예수님의 시체를 올려 놓고 장사지내기 위해서 종부성사(임종때 기름을 바르는 예식)를 받으셨다
또한 그리스 정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예수님을 내려 이곳에 올려 놓았다.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목상이 있다. 이 마리아 상은 포루투칼의 마리아 1세가 1778년에 기증한 것인데, 이 작품은 16-17세기 형이고, 리스본에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한다. 이 제단 밑에 있는 골고다 언덕의 자연석을 볼 수 있다.
14처소
예수님의 무덤
제 14처소 - 예수님의 무덤
예수님의 무덤은 원형의 둥근지붕 밑에 위치해 있다. 이 무덤 주위는 현란하게 장식되어 있고 그 안에는 2개의 작은 방이 있다.
첫 번째 방은 긴 돌의자가 있는 천사의 예배당으로서 세 여인이 “그는 살아나셨다”라고 말한 천사를 본 곳이다(막 16:6).
두 번째 방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한 사람정도가 드나들수 있는 낮은 입구가 있고 안에는 가로 세로 2m의 작은 방이다.
넓은 대리석판으로 덮여 있는 관이 반절을 차지하고 있다. 예수님의 무덤 뒤쪽에는 콥트 소유의 작은 예배당(M)이 있다. 이곳에서 무덤에 속해 있는 관의 뒤부분을 볼 수 있다.
통곡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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